
성종은 조모 정희왕후 윤씨에게 ‘정희(貞熹)’라는 시호를 올리며 깊은 슬픔을 표현하고, 시책보를 빈전에 올립니다. 오늘은 이 장면이 담긴 실록 기록을 통해 조선 왕실의 시호 의례와 정희왕후의 정치적 위상, 그리고 이 날의 상징적 의미를 함께 살펴봅니다.
1. 오늘의 실록
🔹 《성종실록 》154권, 성종 14년 5월 25일 (1483년 6월 18일)
📜 영의정 정창손을 보내어 백관을 거느리고 시책보를 빈전에 올리다.
"홀로 남은 슬픈 손자인 국왕 ○○은 삼가 신하된 마음으로 머리 숙여 말씀을 올립니다.
지금 이렇게 멀리서 조모를 추모하며 장례를 정중히 모시고자 하니, 가슴 속 슬픔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대비께 시호를 정하고 칭호를 높이는 일은, 무엇보다도 정성을 다해 모셔야 할 의례입니다.
옛 법을 따르되, 오직 자손된 도리를 다하고자 합니다.
돌이켜보면 고인이신 대행 대비 윤씨는, 그 도(道)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어진 어머니들인 임씨와 사씨에 비할 만하며, 덕은 주나라의 도태후와 신원후와 같았습니다.
덕을 바탕으로 한 훈육과 화목의 가르침은 궁궐 안에 널리 퍼졌고, 종사가 번창하고 자손이 길한 길조가 온 나라에 은혜처럼 내렸습니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조선의 어머니로 군림하시며 국정을 보좌하셨기에, 백성들은 깊이 사모하고 그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입은 저는 작은 몸이지만, 끝없는 은혜에 보답하고자 마음을 다했는데, 어찌하여 이토록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셨습니까?
이제 다시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모습을 볼 수도 없습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에 마땅히 존귀한 시호를 올려, 고인의 공덕을 기리고자 합니다.
고인이 지니셨던 고결함과 자비로움을 담아, 그 시호를 ‘정희(貞熹)’라 올립니다.
부디 밝은 영혼으로 이 보책(寶冊)을 받아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고인의 복덕으로 자손들이 오이가 무성하게 열리듯 번성하게 하시고, 이 나라의 종묘와 사직이 뽕나무 뿌리로 단단히 엮인 듯 굳건하게 이어지길 바랍니다."
하였다.
📌 실록에서 "국왕 ○○" 또는 "국왕 신(臣) ○○" (실제 이름 대신 ○○ 또는 "휘 아무"로 표기)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재위 중이거나 재위했던 국왕의 이름(휘)을 직접 쓰는 것을 피하는 전통적인 예법 때문입니다. 이를 "휘자 회피", 즉 피휘(避諱)라고 합니다. |
2. 정희왕후 시호, 왜 ‘정희(貞熹)’였을까? - 성종의 시책문 해석
성종은 영의정 정창손에게 백관을 이끌게 하여 조모 정희왕후의 시호를 올리는 시책(諡冊) 의식을 진행합니다.
( 👉 관련글 : 시책의식이란 무엇일까? - 조선왕실의 마지막 예우)
이는 조선 왕실에서 국모나 국왕의 서거 후 덕을 칭송하며 시호를 정하는 중요한 의례 절차입니다.
성종은 조모의 덕성과 정치적 공로를 찬양하며, 그 고결함을 유교 경전의 성현인 여성들에 비유합니다.
“규목과 갈담의 교화(덕을 바탕으로 한 훈육과 화목의 가르침)”이라는 표현으로, 정희왕후의 교육적 영향력과 궁중 덕풍을 드러내고, 자손 번창과 국정의 안정이 그녀의 복과 덕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음성과 모습이 길이 막혔다(목소리와 모습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는 구절에서는 손자인 성종의 애통한 감정이 절절히 전해집니다.
성종은 ‘정희(貞熹)’라는 시호를 정해 조모를 예우합니다.
3. 시호·보책·빈전? 궁중 장례의 용어들 해
- 시호(諡號) : 죽은 왕이나 왕비, 고위 인물에게 덕행에 따라 붙여주는 이름.
- 시책문(諡冊文) : 시호를 정해 올리며 작성한 글. 왕이나 왕비의 공덕을 칭송하고 후손의 존경을 드러냅니다.
- 정희(貞熹) : 정숙하고 어질다는 뜻으로, 왕비 윤씨에게 내려진 시호입니다.
- 빈전(殯殿) : 국왕이나 왕비의 시신을 모셔두는 장례용 전각.
- 보책·보보(寶冊·寶寶) : 시호를 기록한 책(冊)과 인장(寶), 시호를 올릴 때 함께 올립니다. 실록에 나온 '시책보'라는 표현은 이 둘을 함께 이르는 것입니다.
- 규목·갈담 : 《시경》에 나오는 이상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식물.
- 종사·사직(宗廟·社稷): 조선의 왕실과 국가를 뜻하는 상징어.
4. 시호를 올리는 마지막 예우 - 정희왕후 시책의 역사적 의미
이날은 정희왕후의 장례 절차 중 마지막 단계로, 조선 왕실이 고인을 예우하며 공식적으로 ‘정희’라는 시호를 부여한 날입니다.
정희왕후 윤씨는 세조의 비(妃)로서 예종과 성종을 거쳐 3대에 걸쳐 대비로 섭정하며 조선을 안정시킨 인물입니다.
이 기록은 단순한 시호 부여가 아니라, 그녀의 정치적 위상과 국모로서의 공덕이 공식적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확인된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정희대비’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그 명칭이 이 기록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관련글 보기 : [정희왕후와 수렴청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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