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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셰프는 누구였을까? 수라간과 궁중요리의 세계

사관 2호 2025. 6. 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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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 안의 요리사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상궁이 왕의 수라를 직접 만들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조선왕실의 셰프라 할 수 있는 '수라간의 숙수'들과 궁중 식사를 담당했던 상궁·나인의 역할, 그리고 왕의 식사를 둘러싼 조리 구조와 주방 체계를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프롤로그 - 연산군의 수라간, 그 하루의 풍경


조선시대 연산군의 어느 저녁.
구중궁궐 깊은 곳, 수라간에 불이 들어오고 궁녀들과 숙수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외행문을 지나 수라간으로 입궐한 대령숙수 윤상필은  어침승지로부터 오늘의 분위기를 전해 듣는다.

“오늘은 비가 와서 상감께서 기분이 언짢으시다더이다. 고기국이 부드럽지 않으면 큰일이라 하셨습니다.”

윤상필은 조부와 선부를 불러 오늘의 메뉴를 내린다.

“사슴고기국과 돼지고기 장조림이다. 간은 기미상궁이 직접 볼 것이다. 야채는 대비전 생과방에 요청해라.”

한편, 생과방에서는 대령숙수의 부탁을 받은 주방상궁이 나인들에게 고사리와 도라지를 손질하라 지시하고, 도라지는 반드시 물에 두 번 헹궈 색이 흐리지 않도록 하라고 일러둔다. 병과와 과일도 정리되지만, 오늘 상감께 오를 것은 아니다.

참숯 화덕에 불이 붙고, 수라간에는 맑은 육수의 김이 피어오른다. 사슴꼬리국을 맡은 조부는 뼈를 발라 육수를 우리고, 임부는 장조림의 간장을 재며 손놀림을 재촉한다.

윤상필은 국물을 한 모금 떠서 눈을 감고 음미한 뒤 말한다.

“국물 색이 탁하군. 다시 우려오게.”

오후 5시, 기미상궁이 수라간에 들어선다.
그녀는 국물과 고기를 차례로 시식한 뒤, 작은 족자에 붓을 들어 쓴다.

‘간 적정. 색 맑음. 육질 연함. 진상해도 무방.’

수라상궁은 상차림을 점검하며 반찬의 위치를 지시하고, 왕이 식사할 공간의 온도까지 살핀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준비를 마친다.

해가 기운 시간, 연산군이 상 앞에 앉는다.
국 뚜껑이 열리고, 왕은 사슴고기국을 한 숟갈 뜬다. 긴 침묵이 흐른다. 곧 짧은 한 마디가 떨어진다.

“오늘은 비가 와도 고기국 맛이 괜찮다.”

그제야 궁 안의 긴장이 풀린다.


 


연산군의 저녁상을 준비하는 수라간의 풍경을 하나의 장면으로 재구성해봤습니다. 

숙수부터 상궁, 나인까지, 수많은 사람이 협업해서 하나의 수라를 완성합니다.

이제부터, 조선의 수라간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었는지, 왕족의 음식을 만든 ‘왕실의 셰프’는 누구였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대령숙수 - 조선왕실의 진짜 셰프


조선시대 왕의 식사를 준비하는 ‘수라간’은 단순한 부엌이 아니라, 국가급 조리 시스템이 갖춰진 공식 기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직접 요리를 맡은 인물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상궁이 아닌, 사옹원 소속의 남성 조리사, 즉 ‘숙수(熟手)’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고 책임자는 바로 ‘대령숙수’라 불렸으며, 오늘날로 치면 왕실 총주방장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대령숙수는 중인 신분으로, 종6품~종9품에 해당하는 관직 품계를 부여받았습니다. 
사옹원의 정규 관원으로 임명된 대령숙수는 가문 대대로 조리법을 계승한 집안 출신이 많았습니다.

 

즉, 대령숙수는 조선 궁중 요리 기술을 계승하며, 음식 맛과 품질을 책임지는 실질적 조리 총책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습니다.

 

 

2. 숙수들은 어떻게 일했을까? - 수라간의 조리체계

 

음식을 실제로 조리한 것은 대령숙수 아래의 숙수들이었습니다.
재부(齋夫), 선부(膳夫), 조부(槽夫), 임부(飮夫), 팽부(烹夫) 등 다양한 직책의 숙수들이 각자 전문 분야를 맡았죠.

숙수들은 참숯 화덕을 사용해 조리를 했고, 재료 손질, 식기 정리, 상차림 전 점검까지 분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의 분업은 매우 철저해서, 각 숙수는 고유한 전문 영역이 있었고 겹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연산군이 좋아했던 사슴고기국이 준비되는 날이라면,

조부가 뼈를 손질해 육수를 우려내고,
팽부는 그 육수로 탕을 끓이는 작업을 이어받습니다.
임부는 그날 반찬으로 나올 돼지고기 장조림을 졸이고,
재부는 왕이 늦은 밤 드실 수 있는 죽을 준비합니다.
마지막엔 선부가 전체 식기를 정돈해 수라상궁에게 넘기기 직전 단계까지 정리합니다.


직책 한자 주요 담당 업무
조부 槽夫 고기국, 찜, 국물류 (육수 포함)
임부 飲夫 조림, 볶음류, 음료/차류
재부 齋夫 죽, 전골, 반죽 요리, 국수류
팽부 烹夫 끓이거나 삶는 요리, 탕 종류
선부 膳夫 상차림 보조, 접시 정리, 음식 배치 조율

 

조금이라도 음식 맛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문책을 받는 일도 빈번했기에, 그들은 항상 긴장 속에서 일했습니다.

 

 

🧾 참고: 숙수의 근무 형태

  • 숙수들은 교대로 당번을 정해 궁 안으로 들어왔고, 일부는 궁궐 밖에서 살면서 필요 시 입궐해 조리를 맡았습니다.
  • 하지만 행사나 큰 수라가 예정된 날에는 모든 숙수들이 조기 출근해 조리에 참여했습니다.

3. 상궁과 나인의 역할 - 왕실 여성의 식사 준비


수라간과는 별도로, 조선의 궁궐에는 중궁전(왕비), 대비전(대비), 동궁(세자), 세자빈전 등 각 전각마다 별도의 주방인 '내소주방'과 '생과방'이 운영되었습니다.

이곳은 모두 여성 상궁과 나인들이 담당했으며, 각 전각 주인의 일상 식사와 간식, 떡, 병과(과자), 약차 등을 준비했습니다.

 

상궁은 정5품의 품계를 가진 중간 간부급 여성으로, 해당 주방의 책임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급 나인들은 반찬을 다듬고 음식을 나르고 청소하며 상궁의 지시에 따라 실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음식은 해당 전각의 주인(왕비나 세자빈 등)에게만 제공되며, 임금의 수라와는 직접적 연결이 없었습니다. 단, 간혹 왕이 중궁의 병과나 생과류를 원할 경우, 절차를 거쳐 왕에게 올리기도 했습니다.

 

구분 대령숙수 주방상궁
신분 중인 남성 (종6~종9품 상당) 궁녀 (정5품 상궁)
성별 남성 여성
소속 사옹원 (司饔院) 내명부 (중궁전 등 각 전각의 궁녀 조직)
직무 범위 왕실 전체 수라 및 잔치 음식 총괄 조리 각 전각(중궁전 등)의 일상 음식 조리 책임
업무 장소 수라간(왕실 주방), 숙설소 등 내소주방, 생과방 등 전각별 주방
직책 성격 전문 조리인 (셰프 중 최고위) 여성 총괄 조리 행정가+현장조리 겸임
직무 특징 전문 기술자, 대를 이어 세습 궁중 예절+조리 능력을 갖춘 상급 궁녀

 


4. '기미상궁'과 '수라상궁' - 왕의 수라를 완성한 의전 담당자


비록 상궁이 왕의 식사를 직접 요리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미상궁"과 "수라상궁"입니다.

기미상궁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라가 왕 앞에 오기 전에 먼저 시식을 했습니다. 이 시식 기록은 붓글씨로 별도로 작성되어 보관되었으며,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 '간 적정, 색 맑음, 무해' 등의 평가가 남았습니다.

수라상궁은 왕 앞에서 상을 차릴 때, 각 반찬 뚜껑을 열고 시중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상차림은 단순한 배식이 아니라 의례의 일부였기 때문에, 궁중 예법에 맞춰 매우 정제된 행동과 말투로 진행되었습니다.

즉, 수라간에서 요리는 숙수가 했지만, 그 음식을 왕 앞에 올리고 마지막 검증과 의전 역할을 맡은 건 상궁이었던 셈입니다.

 

요약하자면,

  • 상궁들은 수라간이 아니라 각 전각(중궁전, 대비전 등)의 내소주방·외소주방·생과방 등에서 조리했습니다.
  • 이들은 왕비, 대비, 세자빈 등 여성 왕족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간식·병과 등을 만들었습니다.
  • 다만 왕이 식사할 때 수라상궁은 음식을 시중들고, 기미상궁은 독을 먼저 시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5. 세자와 왕비의 식사는 어떻게  준비됐을까?


왕세자의 식사는 동궁전의 내소주방에서 상궁과 나인이 준비했습니다. 하루 두 끼의 식사를 비롯해 간식과 약차도 포함되었으며, 세자 역시 반(半)왕급의 예우를 받았기에 식단은 매우 정제되었습니다.

다만, 세자가 성년이 되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사옹원 소속 숙수들이 수라간에서 특별히 식사를 조리해 동궁으로 보냈습니다.

왕비와 대비의 식사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전각에서 상궁과 나인이 직접 조리했습니다. 이들의 식사는 비교적 절제된 편이었으며, 병과나 생과류 중심의 간결한 상차림이 많았습니다.

 


6. 궁중연회와 제사, 대령숙수의 총지휘 현장


평소에는 하급 숙수들이 수라간의 조리를 전담했지만, 큰 잔치나 제례가 있을 때는 대령숙수가 직접 입궐하여 조리를 총지휘했습니다.

국가 진연(進宴), 종묘 제례, 왕세자 탄생 축하연 등 중요한 의식에는 임시로 '숙설소(熟設所)'라는 대형 조리 공간이 설치되었고, 수십 명의 숙수와 상궁이 동시에 조리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사에서는 일정에 따라 음식을 나누어 준비했으며, 왕의 명에 따라 술잔 위치와 반찬 배열까지 모두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기미상궁의 독시식도 강화되었고, 음식이 올라가는 순서와 방식 역시 의전 담당 내시 및 상궁들과 긴밀히 협의되어야 했습니다.


7. 협업 속에서 일한 조선 궁중 요리사들


결론적으로 조선왕실의 셰프 역할을 한 인물은 상궁이 아니라 사옹원의 숙수들, 그중에서도 대령숙수였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인 조리의 주체였고, 조선 궁중의 정교한 음식 문화를 유지한 기술 계층이었습니다.

상궁과 나인들은 왕실 여성들의 식사를 조리하거나, 수라를 시중드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왕의 식사는 남성 숙수가 조리하고, 여성 상궁이 의전과 검식을 맡는 협업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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