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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시책 의식이란? 왕과 왕비에게 시호를 올리는 마지막 예우

사관 2호 2025. 5. 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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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서 왕이나 왕비가 세상을 떠나면, 유교적 예법에 따라 여러 단계의 장례 절차가 이어집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절차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시책 의식(諡冊儀式)’입니다.
이날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국왕이 조상의 공덕을 칭송하고 백관이 함께하는 국가적 장례 의식이자, 공식적으로 시호를 올리는 가장 엄숙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1. 시책 의식이란 무엇일까?

 

시책의식(諡冊儀式)은 왕이나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인물의 생전 업적과 덕행을 기려 시호(諡號)를 정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조선 왕실의 마지막 예우 절차입니다.

 

‘시(諡)’란 죽은 사람에게 공적과 과실을 평가하여 붙이는 이름으로, 고대 중국 주나라에서 유래한 전통입니다. 조선은 이 제도를 엄격하게 계승했으며, 시호는 왕과 왕비뿐 아니라 고위 신하나 왕실 일원에게도 수여되었습니다.

 

이러한 시호를 정해 발표할 때 행하는 의식이 바로 시책의식입니다. 

 

1.1. 시책의식의 절차

 

시책의식은 일반적으로 빈전(殯殿) 앞에서 진행되며, 국왕이 직접 또는 영의정과 백관을 시켜 시책문(諡冊文)을 고인의 신위 앞에 국왕 명의로 낭독하여 올립니다.  시책문이란, 시호를 적은 책문, 즉 시호를 공식적으로 적어 올리는 글을 말합니다. 

 

이 의식은 왕실 장례에서 매우 중요한 마지막 단계로, 고인의 위호(位號)를 최종적으로 정리해주는 예법이자, 후손의 효성과 왕실의 권위를 함께 보여주는 상징적 행사였습니다.

 

1.2. 시책의식에서 사용되는 의물 - 어보와 어책

 

이 시책의식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의물(儀物), 즉 의례용 물건이 함께 올려집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시호를 올리는 의식을 기록할 때, 이 두 의물을 가리켜 ‘시책보(諡冊寶)’라고 표현합니다.

이때 ‘시책보 시호와 관련된 어책어보를 함께 가리키는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어보(御寶) : 왕실이 수여하는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

어보는 왕이나 왕비에게 책봉·시호·존호를 줄 때 함께 수여되는 의례용 도장입니다. 인장이지만 실사용 목적은 아니며,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입니다. 어보는 실질적으로는 시호를 증명하는 인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보"라는 용어는 왕실의 도장 전반을 포괄하는 말이며, 국가급 의례의 상징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조선왕실어보- 금으로 장식된 거북 모양 도장
조선왕실 어보. 왕과 왕비, 세자 등의 책봉이나 시호를 내릴 때 사용된 금도장입니다. 등 껍질에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거북 모양의 손잡이는 권위와 장수를 상징합니다. 끈은 어보를 봉함하거나 운반할 때 사용되었으며, 도장은 금속으로 제작되어 품격과 신성을 더합니다. (출처 : 국가유산포털)

 

  • 어책(御冊) : 왕실에서 주어지는 의례용 문서

어책이란  어보와 함께 수여되는 책 형태의 문서로서,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시호(諡號) 또는 존호(尊號)를 옥이나 대나무에 새겨 첩(帖)으로 만든 것입니다. 책봉 사실을 공식화하고, 왕실의 신분을 확정하는 인증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왕과 왕비에게는 옥으로 만든 옥책(玉冊)을, 세자와 세자빈에게는 대나무 만든 죽책(竹冊)을 올렸습니다.

 

왕과 왕비가 사망했을 때도 시호를 정해 올릴 때 함께 이 문서를 수여합니다. 시호를 설명하고, 고인의 공덕과 공로를 칭송하는 시책문이 여기에 수록됩니다. 이때의 어책은 시책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왕실어책 - 금박 글씨가 새겨진 옥판 형태의 책
어보와 함께 수여되는 어책은 왕실 인물에게 주어지는 존호, 시호 등을 설명하는 책 형태의 공식 문서입니다. 어책은 옥판 또는 죽판으로 제작되고 판마다 금박으로 글이 새겨져 있으며, 책처럼 접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왕과 왕비에게 사용된 옥책은, 보통 흰색이나 청록색 옥판에 금박 또는 은글씨로 글을 새깁니다. '천년의 책'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출처 : 국가유산포털)

 

 

어보와 어책은 장례 후 종묘 신실의 보장(寶欌)과 책장(冊欌)에 각각 봉안되어, 왕실의 상징 유물로 오랜 세월 전해졌습니다.

 

구분 어보 (御寶)     어책 (御冊)
형태 인장 (도장) 책자 형식의 문서
내용 시호(사후) 또는 신분(생전) 표시 책봉·시호 등 의례의 내용과 의미
용도 신분 보증 / 시호 상징 책봉 정당화 / 시호 칭송
봉안 장소 종묘 신실의 보장(寶欌) 종묘 신실의 책장(冊欌)
시책의식 때의 명칭 보보(寶寶) 시책(諡冊)

2. 시책 의식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시책 의식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됩니다 :

  1. 시호를 정하다
    예문관 등에서 고인의 생전 공적을 기록하고, 유교 경전에 따라 어울리는 시호 후보를 정합니다.
  2. 시책문을 작성하다
    국왕이 고인을 추모하며 올리는 글, 즉 ‘시책문’이 작성됩니다. 이 문장 안에는 고인의 미덕, 백성에 대한 영향,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말이 담깁니다.
  3. 시책보와 보보를 제작하다
    시호를 적은 책자와 그에 대한 인장을 제작합니다. ‘보책(寶冊)’과 ‘보보(寶寶)’는 국왕의 권위로 부여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4. 백관이 시책을 들고 빈전에 나아가다
    보통 영의정 이하 백관이 궁궐 빈전으로 향해 시책보를 올립니다. 이는 국왕을 대신한 국가적 추모의식입니다.
  5. 고인의 영전에 시책을 올리다
    마지막으로 시책문을 낭독하고, 시책보와 보보를 고인의 혼전(魂殿, 혼백을 모신 전각)이나 빈전에 봉안합니다.

이 절차가 모두 끝나면, 고인의 이름 앞에는 정식 시호가 붙게 되며, 후대의 제사와 역사 기록에서도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3. 시책 의식은 왜 중요했을까?

 

시책 의식은 단지 고인을 위한 의례가 아닙니다. 이는 곧 국왕 자신의 효성을 드러내는 공적인 선언이며, 왕실 권위의 정통성을 천명하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왕비나 대비처럼 오랜 시간 정치에 관여한 인물의 경우, 시호에 담긴 의미가 그 인물에 대한 최종 평가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성종은 조모 정희왕후 윤씨에게 시호 ‘정희(貞熹)’를 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인이 지니셨던 고결함과 자비로움을 담아, 그 시호를 ‘정희(貞熹)’라 올립니다."

 

 


4. 대표 사례 : 정희왕후 윤씨의 시책 의식

 

1483년 5월 25일, 조선 왕실에서는 정희왕후 윤씨의 시호를 정하고 시책보를 빈전에 올리는 의식이 거행됩니다.
성종은 직접 시책문을 지어 다음과 같이 조모의 업적을 기립니다 :

  • 그녀의 덕은 은나라와 주나라의 어진 여성에 견줄 만하다고 하며
  • 자손이 번성하고 나라가 평안한 것은 그녀의 교화 덕이라고 찬양하고
  • 조선의 국모로서 30년 동안 군림한 위상을 강조합니다.

성종은 윤씨의 공덕을 “종묘·사직을 뽕나무 뿌리처럼 튼튼하게 지탱했다”고 칭송하며, 시책을 통해 조선 왕실의 이상적인 여성 군주의 전형으로 추상화합니다.

 

이날 올린 시호 ‘정희(貞熹)’는 오늘날에도 ‘정희왕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래가 되며, 정희왕후의 정치적 위상을 오늘날까지 남긴 중요한 이름입니다.

 

📌 관련글 보기
오늘의 실록실록 - 성종, 정희왕후에게 시호를 올리다

 


5. 마무리하며 : 시호는 기억의 언어입니다

 

시호는, 그 인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공식적 선언입니다.
조선 왕실의 시책 의식은 고인을 위한 마지막 예우이자, 후손과 백성에게 남기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시호를 정하는 일은 항상 ‘정성스럽고 경건하게’, ‘정치적으로도 신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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