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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 상차로 본 조선 간언 제도 | 조선은 왜 말 대신 글로 정치했을까?

사관 2호 2025. 4. 1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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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에게 간언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얼핏 볼 땐 대화같지만, 자세히 보면 글을 통해 오가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는 왕에게 간언할 때, 글로 상소(上疏)나 상차(上箚)를 올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상소와 상차, 그리고 대간의 간언 제도를 통해 조선의 정치가 어떻게 문서로 운영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조선의 간언 제도를 묘사한 일러스트. 신하들이 글을 써서 임금에게 상소나 상차를 올리는 모습을 나타냄.
조선시대, 신하들이 글로 바른말을 올리던 간언 제도.

 
 

1. 조선의 간언 제도란? 상소와 상차, 구언의 차이를 중심으로

 
조선은 임금의 잘못이나 잘못된 정치를 신하가 바로잡도록 한, 간언(諫言)’ 제도를 갖춘 나라였습니다. '왕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을 단순한 '충돌'이나 '대립'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공식 제도화된 충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조선 대간(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역할과 구성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이른바 삼사(三司) 또는 대간(臺諫)은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직책이었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상소나 상차를 올려 간언하는 역할을 맡았죠.
 
그 덕분에, 조선에는 왕에게 비판을 건넬 수 있는 제도가 존재했으며,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 절차였습니다.
 

기관 역할 구성
사헌부 관리 감찰 대사헌 이하 감찰관들
사간원 임금에게 간언 사간 이하 간관
홍문관 정책 자문 및 경연 담당 교리부제학응교 등 학자 관원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이 세 기관의 관원들을 통틀어 삼사(三司) 또는 대간(臺諫)이라고 불렀습니다.
왕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이들은 법적으로 간언할 ‘권리’이자 ‘의무’를 가진 자리였죠.
 
 

3. 상소, 상차, 구언 - 조선의 간언 방식 총정리

 

3.1. 상소(上疏)

  • 가장 격식 있는 건의문 형식
  • 글이 비교적 길며,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갖춤
  • 주로 정책 제안, 제도 개선 요청, 국가 문제 제안 등에 사용
  • 왕뿐 아니라 조정 전체에 공개되기도 함
  • 대부분의 관료 뿐만 아니라 유생들도 쓸 수 있음

예: 과거 제도 개혁, 제도 정비, 사회 문제에 대한 개선 요구 등
 

3.2. 상차(上箚)

  • 임금에게 올리는 짧고 간결한 글
  • 글이 직설적이고 간략하며 핵심 위주
  • 왕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반대 의견을 낼 때. 특히 삼사의 대간들이 간쟁할 때 자주 사용
  • 대간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관원)들이 씀

예 : 법령에 대한 이의, 인사 문제, 정책 건의, 간언 등
 

형식  설명
상차(上箚) 짧고 직설적인 간언문대간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형식
상소(上疏) 논리적이고 긴 글정책 개혁이나 제도 건의 시 사용
구언(口言) 왕 앞에서 직접 말로 전하는 방식주로 경연이나 조회 때 사용

 
 

4. 조선에서 말이 아닌 '글'로 간언한 이유는?

 

4.1. 기록 중심 사회, 말보다 글을 중시하다

 
그런데 왜 조선에서는 신하들이 임금에게 의견을 올릴 때, 굳이 말 대신 글로 된 상소나 상차를 사용했을까요?
여기엔 조선 특유의 정치 문화 기록 중심 행정이 배경에 있습니다.
 
조선은 문서 행정과 기록 문화를 매우 중시한 나라였습니다. 말로만 보고하면 흔적이 남지 않지만, 글로 남기면 책임도, 기록도 남죠. 그래서 임금과 신하 사이의 충돌조차 문서로 남기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4.2. 왕 앞에선 말 보다 '예(禮)' - 유교 문화와 간언

 
또한 조선은 유교적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운영되던 사회였습니다. 신하가 왕 앞에서 직접 말로 비판하는 것은,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었죠.
그래서 정중한 형식과 예를 갖춘 ‘글'로 의견을 올리는 방식이 권장되었고, 제도화되었습니다.
 

4.3. 실록이 말해주는 간언의 방식, 글로 남긴 충언

 
실제로 실록에는 ‘문서로 올린 간언’이 자주 등장합니다. 실록을 읽다 보면 이런 표현을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사간원에서 상차하여 아뢰기를…”
“홍문관에서 상소를 올려 논박하니…”
“대간이 합사(合司)하여 간언하되…”
 
이 모두가 공식 문서로 간언한 사례들입니다.
 
📌 상차 예시 - 연산군 2년
 
"윤채의 죄가 분명한데 처벌을 피하신다면, 법은 무너지고 간언은 묵살됩니다.
형벌은 성인조차 폐하지 않았습니다. 전하의 결정은 제왕의 체통에 어긋납니다."
 
→  짧지만 강력하게 임금의 판단을 비판하는 상차입니다.
 
📌 상소 예시 - 정조 14년, 유득공
 
"오늘날 사대부는 집안에서는 군자가 되고, 벼슬길에선 간신이 됩니다.
이는 인재를 선발하는 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청컨대, 과거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소서."
 

→  비교적 긴 상소문의 일부로서, 정책 개혁을 요청한 상소문의 전형입니다.

 

📌 상소 예시 - 연산군 1년, 성균관 유생 

 

"공자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 3년 동안은 그 뜻을 바꾸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선왕이 돌아가신 지 열흘도 안 되어 선왕의 방침을 바꾸시려 합니다.

이런 모습이 어찌 효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전하께서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 정치의 근본을 바로잡으시고, 선왕께서 이룩한 바른 교화를 이어가셔서 백성들의 간절한 기대에 부응해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  불교 의례를 반대하는 성균관 유생의 상소문 일부입니다.

 

5. 글로 정치한 나라, 조선이 남긴 유산

 
조선은 신하가 임금을 비판하는 일조차, 제도로 만들어 장려한 나라였습니다. 간언은 임금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도리를 지키고 백성을 살피는 정치를 지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실록 속 상차와 상소는, 바로 그 치열한 정치의 기록입니다. 연산군을 비롯한 임금들과 대간의 설전 속에는, 말과 권력이 맞붙는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한 줄 요약 

조선은 말이 아닌 글로 정치했습니다.

글로 간언하고, 글로 책임지며, 글로 역사를 남긴 사회였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실록을 통해 500년 전 정치의 목소리를 ‘문서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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