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의 메모

훈민정음은 왜 실록에 11번밖에 등장하지 않을까?

사관 2호 2025. 4. 2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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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훈민정음’이라는 단어는 고작 11번만 등장합니다. 왜 이렇게 적을까요? 기록의 관점과 조선 사관들의 인식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한글은 위대한 문자지만, 실록에선 너무 조용하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직접 창제하고 백성을 위해 반포한 문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할 만큼 그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죠.
그런데 조선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훈민정음’이라는 단어가 단 11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적게 기록된 걸까요? 그 이유는 단지 무관심이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사회의 구조와 문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1. 훈민정음은 ‘정통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은 한문 중심의 유교 국가였습니다. 왕실에서 사용한 문서는 물론, 관리들의 상소와 각종 법령, 외교문서까지 모두 한문으로 작성되었죠. 훈민정음은 세종의 주도로 창제되었지만, 실용적이면서도 계층과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문자로 인식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언문(諺文)’이라는 다소 낮춰 부르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실록을 기록한 사관들 역시 성리학 교육을 받은 한문 중심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훈민정음을 '기록할 만한 정통성 있는 사건'으로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실록은 ‘문자’보다 ‘정치’를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정 중심의 기록물입니다. 왕의 언행과 정치, 인사, 외교, 군사 등 국가 운영과 직접 관련된 사건들이 기록의 중심을 이룹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문자로서 교육과 민간 생활 속에 조용히 보급된 측면이 강했고, 조정 회의나 공론, 의례의 주제가 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즉, 실록이 다루는 영역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주제였던 것입니다.
 
 

3. 정책은 기록되었지만, ‘문자 이름’은 사라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록 속에는 훈민정음 자체보다는 그 사용을 금하거나 제한하려는 정책들이 더 자주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언문을 쓰지 말라”, “언문으로 공문서를 작성하지 못하게 하라”는 식의 기록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즉, 훈민정음이라는 명칭보다는 ‘언문’이라는 단어가 실록에 훨씬 많이 등장하며, 해당 정책의 맥락에서만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셈입니다.
 
 

4. 이름이 일관되지 않았다 - 훈민정음? 언문? 정음?

 
현대에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어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이 문자를 부르는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 ‘언문(諺文)’은 백성의 말이라는 뜻으로,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였고,
- ‘정음(正音)’은 ‘바른 소리’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자주 쓰이진 않았습니다.
- ‘언자(諺字)’라는 표현도 가끔 등장합니다.
 
게다가 ‘훈민정음’은 문자 자체를 지칭하기보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 제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명칭이 불명확하고 혼용되었기 때문에, 실록에서 ‘훈민정음’이라는 단어로만 검색하면 실제보다 훨씬 적게 보이는 착시 효과가 생깁니다.
 
 

5. 실록 속 단어 빈도 비교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되는 훈민정음 관련 주요 단어의 등장 횟수입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

키워드 등장 횟수 비고
훈민정음 약 11회 문자 이름 혹은 책 제목으로
언문 수백 회  대부분 정책적·비판적 맥락
정음 소수 ‘훈민정음’과 무관한 경우도 있음

 
→ 실록에 훈민정음이 적게 등장하는 건 무관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록 체계와 표현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실록에는 적게, 역사에는 깊게 남은 이름

 
훈민정음은 조용히 시작되었고, 실록에도 그렇게 조용히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문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전 국민이 사용하는 문자로 자리 잡았고, 그 이름은 국가기념일까지 부여받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기록은 적었지만, 영향은 거대했던 문자.
그것이 바로 훈민정음의 힘이자 조선이 남긴 기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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