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7년, 왕량성에서 별이 북쪽으로 흐르자 조선은 지천사에서 불교의식을 열었습니다. 실록 속 별 하나가 말해주는 조선의 정치와 신앙을 알아봅니다.
🔹오늘의 실록 한 줄
📜 “왕량성에서 어떤 별이 나와 북쪽으로 흐르니, 지천사에서 법석 (法席)을 베풀었다.”
-《태조실록》11권, 태조 6년 5월 15일
조선 태조 6년 5월 15일(양력 1397년 6월 16일), 실록에 적힌 이 한 줄은, 하늘에서 이상 징조가 포착되자 조정이 서울 도심의 사찰 ‘지천사’에서 불교 의식을 열어 재앙을 막고자 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왕량성이란? 조선이 두려워한 별자리의 의미
왕량성은 은하수 북쪽, 현재의 서양 별자리로는 카시오페이아 자리에 해당하는 고대 별자리입니다. 고대 점성술에서는 이 별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붙었습니다 :
- 별이 밝으면 말(馬)이 많아지고,
- 별이 어두우면 말에게 재앙이 닥치며,
- 유성이 왕량성을 지나면 전쟁과 출병이 일어나고,
- 북쪽으로 흐르면 전쟁, 교량 단절, 말 부족 등의 ‘국가 재앙’을 의미합니다.
즉, 이 날의 유성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군사적 불안과 민심 동요의 징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지천사, 조선 초 불교 의식이 열린 사찰
- 위치 : 현재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자호텔 자리에 있었던 사찰
- 특징 : 고려 말부터 500명 이상의 승려가 머물던 대형 사찰
- 인접 : 조선초 중국 사신 숙소 ‘태평관’과 매우 가까웠음
특히 조선 건국 직후, 하늘의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불교 의식이 자주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지천사’라는 이름은 『마리지천보살다라니경』에서 따온 이름으로,
천재(天災)를 막고 재난을 물리치는 밀교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날 조정이 지천사에서 법석을 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 ‘법석(法席)’이란?
- 법(法): 부처의 가르침
- 석(席): 자리, 의식이 펼쳐지는 장소
'법석'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부처의 가르침이 펼쳐지는 자리, 즉 스님이 설법하거나 의식을 집전하는 자리를 뜻합니다.
하지만 조선 초 불교 사찰 ‘지천사’에서 열린 법석은, 단순한 설법이 아니라 국가 재앙을 막기 위한 종합 불교 의례였습니다.
스님들은 불경을 낭독하고, 기도와 재물을 통해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때로는 망자나 잡신에게 공양을 베푸는 의례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즉, 법석은 불교 의식 중에서도 ‘재앙을 없애는 기능’에 특화된 의례였던 것입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 불교가 여전히 중요했던 이유
태조는 유교적 국가질서를 세워가던 중이었지만, 불교를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습니다. 특히
- 무학대사와 가까운 사이였고
- 고려 왕족의 영혼을 위한 수륙재를 여는 등
정치적으로는 유교, 의례적으로는 불교를 병행하던 과도기였던 셈이죠.
1397년 5월, 같은 시기 왜구가 해주 앞바다에 출몰하며 민심이 술렁이자 조정은 하늘과 땅의 재앙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천사의 법석’이었습니다.
🔹왕량성과 지천사 법석이 보여주는 조선의 정치-종교 관계
하늘의 별 하나에서 시작된 기록이지만, 이는 단순한 관측이 아니라 조선 초기 하늘-인간-국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유교 국가라 해도, 하늘의 징조 앞에서는 절을 찾던 시대.
‘왕량성의 별’은 그 두려움과 믿음, 정치와 종교의 균형이 얽힌 조선이라는 나라의 초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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