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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1년, 열네 살 소녀 덕례는 왜 자신의 아버지를 ‘숙부’라고 말했을까요? 그리고 이것은 왜 커다란 문제가 되었을까요? 이날 광해군 일기에 실린 한 줄은, 진실과 위협 사이에서 흔들린 한 소녀의 사건을 통해 당시 사법과 유교 질서, 여성과 노비의 인권에 관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1. 오늘의 실록
대사헌 조정, 장령 윤선이, 전에 아비를 등진 여인인 덕례(德禮)를 변핵(辨覈)할 때 사실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인피하니, 체직하였다.
(현대어 해석 : 대사헌 조정과 장령 윤선이, 이전에 아비를 부정한 여인 덕례(德禮)를 조사할 때 사실대로 밝혀내지 못한 책임으로 탄핵되어 파직되었다)
- 광해군일기[중초본]16권, 광해 1년 5월 18일 (양력 1609년 6월 27일)
2. 실록 해석 및 요약
덕례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숙부’라 주장한 혐의로 의금부에 잡혀갔고, 이는 조선 유교사회에서 가장 중한 죄 중 하나인 ‘강상죄’(윤리를 어지럽힌 죄)에 해당했습니다.
당시 조사 책임자였던 대사헌과 장령이 이를 충분히 밝히지 못해 책임을 지고 면직된 것입니다.
이후 의금부는 덕례를 국문하기로 결정하고, 덕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주변 인물들까지 소환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로 합니다.
3. 용어 설명
- 변핵(辨覈): 사실 여부를 조사해 판단함
- 인피(因陳): 누군가의 진정이나 탄핵, 고발로 인해 처벌당하는 일
- 체직(遞職): 관직을 파면하거나 해임함
- 강상죄(綱常罪): 부자, 군신, 부부 등 인간 관계의 기본 질서를 어긴 죄. 조선 시대 중죄로 다룸
4. 기록의 의미 (흥미로운 포인트)
이 사건은 이후 수개월간 실록에 걸쳐 이어지며, 덕례와 그녀를 위협한 김상신의 공방, 형조와 의금부의 판단, 그리고 국왕의 판결까지 점차 확장되어 갑니다.
놀라운 점은 당시 사회에서 단순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않은" 행위가 사형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범죄로 여겨졌다는 점이며, 국왕조차 이 문제에 대해 수차례 전교를 내려 형벌의 강도를 조절하게 됩니다.
이날의 실록 기록은, 조선의 법과 윤리, 그리고 왕권의 개입까지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후 사건 전개와 관련 인물 분석은 [사관의 인물열전 - 납치 협박당한 것도 죄였던, 덕례 이야기] 및 [사관의 메모 - 조선의 강상죄와 형벌체계]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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