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실록을 한 줄 한 줄, 쉽고 꼼꼼하게 풀어보는 시리즈', 오늘은 연산군 일기 4일째입니다. 이날도 성종의 장례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불교 의례를 둘러싼 연산군과 신하들의 의견 충돌이 계속됩니다. 오늘은 연산군의 고집과 신하들의 반발, 그리고 장례 절차의 마무리에 대한 기록을 쉽게 풀어봅니다.
1. Day 4 - "듣지 않겠다!"
신하들은 불교식 제사를 끈질기게 반대하지만, 연산군의 고집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두가 반대하지만, 묵살하고 밀어붙입니다. 이 와중에 장례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연산군과 신하들의 갈등은 더 깊어집니다.
2. 실록 내용 쉽게 읽기
🖌 대행 대왕의 행장 작성 지연 문제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의 장례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성종의 행장을 쓰는 일이 미뤄졌습니다. 대간(언론 기능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불교 의례를 반대하며 대궐에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해 연산군은 정승들에게 의견을 묻도록 했습니다.
📌 연산군과 신하들 사이의 논쟁 과정은 이전날 기록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 이전글 : Day3 - 불교 의례 논쟁과 신하들의 반발 보기 |
윤필상 : "명나라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급한데 신하들이 대궐에서 논쟁하느라 늦어지고 있으니, 한 사람만 남고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노사신 : "일에는 늦출 것과 서두를 것이 있는데 선왕을 위해 재를 지내는 일은 나라의 흥망이 달린 중대한 일이 아닌데다, 옛부터 지내온 것이니, 대궐에 몰려들어 논란을 벌이는 것은 매우 그릇된 일입니다."
신승선 : "노사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 장면을 기록한 사관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절에 재를 올리는 일이 큰일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큰일이란 말인가'라며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 추가정보 * 행장이란, 주로 왕이나 고위관료, 학자 등 중요한 인물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한 글을 말합니다. 조선에서는 왕이 죽으면 국상 기간에 반드시 행장을 작성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 목적 : 왕의 업적과 공적을 기록해 종묘에 올릴 때 참고하기 위해서. 명나라에 보내는 보고서의 기초 자료로 삼기 위해서. - 누가 작성하나 : 사관이나 학식 높은 신하들이 모여서. 행장작성이 늦어진다는 건 장례 절차가 지연되는 문제 뿐만 아니라 명나라와의 외교 문제와도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이날의 실록에서 성종의 행장을 빨리 작성해서 명나라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때문이지요. 그런데 정작 행장을 써야 할 신하들이 대궐에 몰려와서 논쟁을 벌이느라 이 일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노사신이 불교 제사 올리는 것보다 행장작성이 더 시급하다고 말한 건 이런 맥락입니다. * 노사신 : 세조의 즉위를 도왔으며 성종때는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성종의 유교 통치를 뒷받침했고 연산군의 즉위 초기에는 경험이 풍부한 원로 신하로서 충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신중하고 중립적인 성격으로 유교적 원칙을 지키려 했던 유학자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날은 불교 의례와 관련해 연산군의 편에 서서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
🖌 신하들의 거듭된 반대와 연산군의 고집
홍문관과 사헌부에서 거듭 불교식 제사 예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런 반발을 모두 쳐냈습니다.
홍문관 : "불교 의례를 거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을 올렸는데, 왜 그 뜻에 대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으십니까."
연산군 :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니, 물을 필요가 없다."
홍문관 : "대왕대행(성종)께서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대신들과 의논했는데, 혼자 결정하시다니 유감입니다."
연산군 : "듣지 않겠다"
사헌부, 사간원 : "나라를 이어받은 첫날부터 불교식 제사를 치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종은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불교식 예법은 효도가 아닙니다."
연산군 : "금지하시지는 않았으니, 효도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연산군은, 물러서지 않고 대신들의 의견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한편, 부처에게 공덕을 비는 소문을 쓰기를 거부했던 홍문관의 관리 '손주'도 연산군의 명을 최종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손주 : "불교를 믿지 않으신 대행 대왕이 승하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부처에게 아첨해서 복을 구하는 것은, 대행 대왕을 모욕하는 일이니, 어찌 명령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연산군은, 이 일에 대해 정승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소문을 지어서 바친 뒤에 의견을 고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마음을 지키려 하는 것 또한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다른 관원을 시켜서 지어 바치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무례한 일은 맞습니다. 하지만 비록 죽더라도 소문을 지어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매우 급한 일이기도 하니, 우선은 승정원을 시켜서 짓게 하고, 손주의 일은 나중에 처분하십시오."
"승정원에서도 홍문관 못지 않게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니, 소문을 지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연산군의 명으로, 승정원에서 당번을 서던 초급 관리가 예전에 쓰던 소문을 베껴서 제출하는 것으로 일이 일단락됐습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말단의 처지란...)
🖌 태종의 칭호 문제
종묘에 모신 태종의 칭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예조에서는,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난처하니, 우선은 태종이라고 칭하고 나중에 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정승들이 모두 예조의 뜻을 따르기를 청하자 연산군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 추가정보 : 왜 갑자기 태종의 호칭 이야기를 꺼냈나? - 왕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의 공간은 한정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대 왕의 신위를 모셔오려면 일정 공간을 비워주어야 했습니다. 먼 조상부터 차례대로 별도의 사당으로 옮겨지고 최근의 왕들만 종묘의 정전에 남겨두는, 일종의 순환 시스템이었죠. - 이번에는 태종이 성종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으로 떠날 차례였습니다. - 태종의 칭호 문제가 논의된 배경 : 태종이 정전에 계속 남을지, 아니면 영녕전으로 이안될지를 두고 결정이 보류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전에 남아 있으면 ‘○○대왕’, 영녕전으로 옮기면 ‘○○조’나 ‘○○종’이라는 칭호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따라서 남느냐, 떠나느냐 결정이 나지 않은 모호한 상태에서 어떤 호칭을 사용할지가 문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 이와 관련된 종묘의 공간 원칙, 조천 제도, 불천위 규정 등은 [종묘 시리즈 4편 – 종묘에선 왕들도 방을 빼야 했다]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
🖌 장례 절차의 완료
오전 7시-9시 사이에 성종의 시신을 관에 넣고, 오후 3시-5시 사이에 장례 절차를 완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린 뒤, 조정의 모든 관리와 신하들이 곡을 하며 슬퍼했습니다.
📌 추가정보 : 조선의 국상 절차는, 주자가례에 따라 부모상과 같이 3년 (실제로는 27개월)동안 진행됐습니다. * 단계 : 초상 (3일) -> 성빈(입관) -> 발인 및 국장(시신을 묘지로 옮겨 국왕의 묘에 안장) -> 복상(상복 입는 기간) -> 탈상 일반적으로, 초상에서 국장까지의 기간은 보름에서 한달 정도가 걸렸습니다. 28일자 실록에서는 이 가운데 입관까지 마친 상태이며, 발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입니다. |
🖌 백성들과 왜인의 반응
성종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장터와 시장도 5일동안 문을 닫았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성종의 죽음을 애통해했습니다. 동평관에 일본에서 온 사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백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성군이 돌아가셨다며 함께 애도했습니다.
📌 추가정보 - 동평관은,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 부근에 있던 관청입니다. 외교 사절, 특히 일본에서 온 사신들을 맞이하고 교역 물품이나 국서를 교환하던 장소였습니다. |
3. 정리 - 끝인 듯 끝이 아닌 갈등
28일에 기록된 연산군 일기는, 연산군과 신하들의 의견 출동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을 예고합니다. 장례 절차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신하들의 반대와 연산군의 고집이 계속되는 이상, 이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합니다.
과연 연산군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 있을까요?
다음글은, 연산군이 드디어 즉위식을 거쳐 진짜 왕이 되는 날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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