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2년 1월 1일자 기록을 살펴봅니다. 연산군이 즉위한 지 하루 지난 날, 첫 국정 운영에서 대간과 충돌하는 모습이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이는 연산군 통치 시기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1. 연산군 2년 Day 1 - 즉위식 다음날, 시작부터 대간과 충돌
연산군 2년 1월 1일, 조정에서는 두 가지 핵심 사건이 논의됩니다.
하나는 ‘정진 사건’으로 대표되는 풍기문란과 유교 질서 문제, 다른 하나는 ‘절에 소금 공급’이라는 재정 운용 이슈였습니다.
두 사안 모두에서 연산군은 대간의 반대를 정면으로 거절합니다.
이 논쟁은 이날로 끝이 아니라 이후로도 한동안 지속됩니다. 오늘은 그 발단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2. 실록 쉽게 읽기 - 연산군 2년 1월 1일
🖌 연산군과 대간, 정진 (鄭溱) 사건을 두고 충돌하다
사헌부 대사헌 이집과 사간원 사간 윤석보가 정진(鄭溱)이라는 사람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아뢰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연산군과 이들 사이에 논쟁이 오갔습니다.
대간들 :
“정진 등의 사건에 대해 전하께서 ‘혹시 곤장을 맞다 죽을까 걱정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가 사실이라면 마땅히 벌을 내려야지, 미리 목숨이 끊어질 것을 걱정할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되면 ‘죄를 지어도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 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강상(부모·자식·신하·임금 간의 윤리 질서)에 큰 문제를 일으킨 중대한 사안이니, 반드시 다스려야 합니다.”
연산군 :
“정진 등이 실제로 죄를 지었다면, 곤장을 맞다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만약 무죄인데 죽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진짜 죄인은 빠져나가고, 죄 없는 사람이 누명을 써서 죽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형벌의 실패 아니겠느냐.”
대간들 :
“전하, 임금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재상의 몫이고, 임금의 눈과 귀가 되어 잘잘못을 바로잡는 건 대간의 역할입니다.
지금 대신과 대간이 모두 그들을 벌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는데, 전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않으십니다.
전하는 작은 죄에 대해서도 유사에게 맡겨 추국하게 하시면서, 정진 등처럼 중한 죄는 왜 특별히 감싸려 하십니까?
사헌부에서 올린 탄핵도 근거 없는 게 아니고,
관련자들도 이미 자백했는데 어찌 억울한 일이라 하시겠습니까?”
연산군 :
“대간의 말을 어찌 모두 다 따를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내가 듣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너희가 무서워서 들어주어야 하느냐?”
대간들 :
“정진 등의 일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너희 말을 두려워서 따르겠느냐’고 하셨지만, 임금이 대간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오히려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연산군은 끝까지 대간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 추가정보 :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2년 1월 1일자)에 기록된 "정진(鄭溱) 사건"은, 단순한 풍기문란 사건을 넘어, 유교적 도덕 질서와 조선의 정치 원칙, 왕권과 대간간의 권력 갈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 사건 개요 : 정진(鄭溱)이라는 사람이 몇몇 인물들과 함께 기녀들과 술자리를 벌인 혐의를 받았습니다. 1. 발생 시기: 성종 말기(1494년경)부터 연산군 초반까지 2. 주요 인물: - 정진(鄭溱): 사건의 당사자 - 윤채(尹埰): 사건에 연루된 고위 관리 - 옥경(玉京): 사건과 관련된 기녀 3. 사건 내용: 정진을 비롯한 일부 관리와 유생들이 기녀들과 어울려 사치스럽고 방탕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혐의를 받음. 문제는 단순한 기생 잔치가 아니라, 이 술자리에 왕실과 가까운 인물들이나 지체 높은 이들의 가족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점이었죠. 공적인 도리를 어지럽혔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파장이 컸습니다. * 대간이 문제 삼은 핵심은 무엇인가? 대간(사헌부·사간원)은 이 사건을 '유교적 윤리를 어지럽히는 중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기녀와 놀았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신분 있는 자들이 방탕한 유흥을 벌였다는 점이 문제가 됐던 것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강상지변’(綱常之變, 윤리 질서 파괴)에 해당한다고 본 거죠. 단순한 풍기문란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 질서와 도덕적 기반을 흔드는 큰 죄이니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
🖌 대간, 허위 증언까지 조목조목 반박하다
대간들은 다시 정진 사건을 끈질기게 아뢰었습니다.
“정진 등의 일은 대간이 몇 달간 논하고, 대신들도 여러 번 보고했는데, 전하께서는 계속 애매하다고만 하십니다.
저희는 전하께서 저희 충정을 모르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억울한 척 하려고 세 가지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거짓말 사례를 구체적으로 정리합니다.
“윤채의 사위 이계금이 친구에게 “잔치한 사람은 장인(윤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라고 들었다는 말.
윤채의 아들 동손이 누군가에게 “잔치는 허함·정자지 등이 한 일이라 들었다”고 전한 말.
윤채의 종 정동이 “예전에 기생이 무풍정(허함)과 놀았다고 했다”는 말.
이 셋 다 조사해보니 사실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계금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서로 말을 맞춘 것이 들켜서 자백했습니다.
옥경이라는 기생의 증언도 형벌 없이 자발적으로 나왔으며, 윤채도 나중엔 잔치를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과거에도 중죄를 받았던 사람이라, 이번 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 사건은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큰 문제이니, 반드시 끝까지 추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연산군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추가정보 : 대간들은, 연산군에게 반박하기 위해, 정진 사건의 조사 과정을 조목조목 얘기합니다. 진술의 일관성 부족과 증거 조작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 관련자들의 증언 : 1. 윤채의 사위 이계금의 증언: “그 잔치에서 기생들이랑 놀던 사람은 정진과 우리 장인어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고 들었어요.” 2. 윤채의 아들의 증언: “기생을 데리고 놀았던 사람은 무풍정(허함)이나 정자지였다고 들었어요.” 3. 윤채의 종 정동의 증언: “기녀가 잔치에서 놀았던 건 허함이라고 했어요.” * 증언의 신빙성에 대한 조사 결과 - 대간이 조사를 해보니, 이계금이 친구한테 편지를 보내서 말을 맞추려다 걸림. - 옥경(기생)은 정진과 윤채가 잔치에서 기생들과 놀았다고 증언. 고문 받고 한 말이 아니라 일반 조사에서 진술이라 신빙성 높음. - 윤채의 진술 번복 : "맞다, 우리가 기생과 잔치 했다." |
🖌 연산군의 내수사 소금 공급 지시 - 선왕 성종의 명령이었을까?
연산군이 내수사에서 작성한 공문을 승정원에 내려보내 명령을 전달하게 했습니다. 그 내용은, 유점사와 낙산사 두 절에 소금을 공급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승지들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연산군 :
“이건 선왕(성종)께서 결재하신 일이다.
『속록』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때 다시 보고하지 않아 빠진 것일 뿐이니, 원래대로 시행하라.”
승지들 :
“『속록』에 없는 일을 다시 시행하면 앞으로도 선례가 될 것입니다.
소금은 백성의 노동으로 얻은 것이니, 절에 주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또 내수사는 노비나 곡식에 관한 일은 직계 보고할 수 있으나, 이번엔 절에서 올라온 장계만 듣고 승정원에도 보고하지 않았으니 절차가 어긋났습니다.”
📌 추가정보 : * '속록'이란? 《경국대전》 이후 새로 생긴 법령이나 제도 변경사항을 따로 모아 정리한 '보조 법령집'입니다. 조선에서 '경국대전 + 속록'은 함께 법적 기준으로 활용되었죠. → 자세한 설명은 [이 글]에서 확인해 보세요. |
3. 오늘의 실록 정리
연산군 즉위 2년은 대간과의 갈등으로 출발했습니다. 정진 사건과 소금 지급 문제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유교적 질서를 흔드는 문제였고, 하나는 왕의 결정과 법령의 기준이 충돌한 사례였죠.
이날의 논쟁은 연산군 통치의 방향성을 미리 예고한 장면입니다. 왕권과 언론, 도덕과 현실, 이상과 통치력의 충돌이 이때부터 본격화됩니다.
다음 날의 실록에서는 이 논쟁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2년 Day2 - 몸은 아프다 하고 귀는 닫다
오늘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2년 1월 2일자 기록을 살펴봅니다. 병을 이유로 경연을 빠진 연산군은, 윤채 사건을 두고 거듭된 간언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대간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날입
silloknote.tistory.com
'실록 정주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2년 Day3 - 끝나지 않는 윤채 사건, 그리고 중이 되어버리는 백성 (0) | 2025.04.11 |
---|---|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2년 Day2 - 몸은 아프다 하고 귀는 닫다 (0) | 2025.04.11 |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1년 Day5 - 연산군, 진짜 왕이 되는 날! (0) | 2025.04.09 |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1년 Day4 - 성종의 장례 절차와 연산군의 독단적인 결정 (0) | 2025.04.08 |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1년 Day3 - 불교 의례 논쟁과 신하들의 반발 (0)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