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2년 1월 3일자 기록입니다. 대간과 대신들이 다시 윤채와 정진의 처벌을 요청하지만, 연산군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 백성들이 왜 중이 되는지를 고민하며, 군역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모습도 드러납니다.
1. 연산군 2년 Day3 – 윤채 사건, 끝없는 갈등.... 그리고 백성을 걱정하는 왕
1월 3일 실록에는 세 가지 주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어제에 이어 윤채와 정진의 처벌 문제를 두고 조정이 다시 술렁입니다.
그리고 연산군은 백성들이 왜 중이 되는가를 고민하며, 군역 제도의 문제를 짚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속 간언이 묵살되자 대간이 아예 사직까지 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죠.
과연 연산군은 이 간절한 목소리에 응답했을까요? 이날 실록, 한 줄씩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2. 실록 쉽게 읽기 - 연산군 2년 1월 3일
🖌 대간과 의정부가 또다시 윤채를 처벌하라고 아뢰다
이날도 조정에서는 어제와 같은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의정부 대신들은 또다시 윤채와 정진 같은 인물들을 끝까지 국문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연산군 :
"국문을 하려면,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 말의 출처부터 따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 출처조차 확인할 수 없으니, 조사를 할 수가 없어 그냥 두는 것이다."
윤채, 정진 사건은 전날까지 대간과 여러 번 충돌을 일으킨 주제였고, 이날도 왕과 신하들 사이에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납니다.
🖌 연산군, “백성이 왜 중이 되는지” 직접 설명하다
그런데 같은 날, 연산군은 아주 흥미로운 말을 꺼냅니다.
“요즘 왜 이렇게 사람들이 중(僧)이 되려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그 원인이 군역(군 복무)의 과중함에 있다고 스스로 분석합니다.
연산군 :
“중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거친 산속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사는 삶이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백성들은 군적에 빠짐없이 등록되어, 한 집에 장정이 여러 명이어도 모두 군역에 불려가다 보니 남은 사람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그러니 먹고 살 방법이 없어 출가해 중이 되는 것이다.”
연산군은 《서경》의 한 구절까지 인용하며,
"백성의 삶이 어려운 걸 탓하기 전에, 쉬운 길을 찾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그리고 병조에 이렇게 지시합니다.
“어떻게 하면 군정(군사 제도)을 허술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백성들에게 여유를 줘서 생업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보라.”
🖌 승지들의 답변과 요청
이에 대해 승지들은 《대전속록》을 들며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이미 군사 관련 법령은 아주 세심하게 잘 짜여 있어, 더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군인 수를 무작정 줄이면, 오히려 제도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시니, 왕명을 내려 관련 부서에 의견을 구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또 최근 공역(공공 노동)이 너무 많아 경기 지역 수군과 보정병들이 파산 직전입니다.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이들을 불러내지 않도록 하소서.”
연산군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해당 부서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게 합니다.
🖌 대간,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사직 청원
하지만 윤채, 정진 사건은 여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대사헌 이집, 사간원 대사간 이인형 등 대간들은 다시금 아뢰며 연산군을 설득합니다.
대간들(이집, 이인형 등) :
“신들이 하는 말이 모두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이기려 하십니다.
이기려는 정치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대간들은, 윤채 사건뿐 아니라 소상재, 보은사의 불사, 윤탕로 석방 등에 대해 전부 간언했지만 전부 무시당했다고 하소연하며, 이렇게 청합니다.
“신들의 간언이 죄가 된다면, 저희의 직책을 바꿔주십시오.”
하지만 연산군은 끝내 이 요청마저도 듣지 않았습니다.
📌 보충 정보 : - 소상재(小祥齋): 소상재는 부모의 사망 후 1주기 때 지내는 제사입니다. 연산군이 이 시기에 소상재를 지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를 금지하려 하였으나, 대간이 이에 반대하며 논쟁이 있었습니다. - 보은사(報恩寺)의 불사(佛事): 보은사에서 대규모 불사를 진행하려 하였으나, 대간은 국가 재정의 낭비와 불교 행사에 대한 지나친 지원을 우려하여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 윤탕로(尹湯老)의 석방: 윤탕로는 이전에 죄를 지어 처벌받았으나, 연산군이 그를 석방하였습니다. 대간은 이러한 결정이 부당하다고 여겨 반대하였습니다. |
🖌 승려가 된 백성에 대한 연산군의 고백
연산군은 병조에 다시 한 번 말을 전합니다. 그는 요즘 중이 되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백성 중 누가 부모를 모시고 자식 키우며 평온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군정이 너무 빡빡해서 한 집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군에 끌려간다.
그러니 먹고살 길이 없어 결국 집을 나가 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백성이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주면서도, 군사 제도도 무너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의논하라.”
🖌 야인 12명, 조정에 조알하다
야인(야외 부족 또는 국외 소수민족) 출신 인물인 중추 양개 등 12명이 조정에 와서 문안 인사를 했습니다.
3. 오늘의 실록 정리
연산군은 이날도 대간들과 윤채, 정진 등의 처벌 문제를 놓고 대립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성의 생계를 고민하며 군역 제도의 개선까지 직접 지시합니다.
폭군으로 기억되는 왕이지만, 그의 초기 정치는 의외로 백성의 삶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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