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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왜 실록에 11번밖에 등장하지 않을까?

조선왕조실록에서 ‘훈민정음’이라는 단어는 고작 11번만 등장합니다. 왜 이렇게 적을까요? 기록의 관점과 조선 사관들의 인식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한글은 위대한 문자지만, 실록에선 너무 조용하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직접 창제하고 백성을 위해 반포한 문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할 만큼 그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죠. 그런데 조선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훈민정음’이라는 단어가 단 11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적게 기록된 걸까요? 그 이유는 단지 무관심이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사회의 구조와 문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1. 훈민정음은 ‘정통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은 한문 ..

사관의 메모 2025.04.23

훈민정음 반포일, 왜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 세종실록과 해례본의 차이

훈민정음 반포일은 왜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창제는 있는데 반포는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침묵의 원인을 실록의 기록 방식과 조선의 정치 속에서 찾아봅니다. 창제는 있는데 반포는 없다? 실록의 침묵을 해석하다 1443년 12월 30일(음력 기준),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한 새로운 문자 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세종실록》은 전합니다. 이 날짜는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4년 1월 10일에 해당합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대사건은 《세종실록》에 단 한 줄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이달에 임금이 언문 스물여덟 자를 지었다.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기사) 이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한글 창제"로 알고 있는 역사적 순간을 공식적으로 남긴 ..

사관의 메모 2025.04.23

1443년 (세종 25년) 12월 30일 - 훈민정음이 실록에 기록된 날

1443년 음력 12월 30일, 세종 25년의 마지막 날. 조선왕조실록에는 단 한 줄의 기록이 실립니다. 바로, 세종이 백성을 위한 새 문자 ‘훈민정음’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한글’의 시작은, 이렇게 실록 속 조용한 한 문장으로 등장합니다. 🔹 오늘의 실록 한 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 이를 훈민정음이라 일렀다.” 🔹 실록 기록 ✔️ 날짜: 세종 25년 12월 30일 (양력 1444년 1월 10일)✔️ 위치: 《세종실록》 제102권 🔹 실록에 언급된 훈민정음 창제 기록 원문 (현대어 해석)“ 이달에 임금이 직접언문(백성을 위한 글자) 28자를 지었는데, 이 글자는 옛날의 전자(篆字, 전서체 글자)를 본떠 만들었으며, 초성(初聲)·중성(中聲)·..

대보를 받은 뒤에야 진짜 왕이 된다? 조선 왕권의 상징, 대보 이야기

조선 시대 국왕은 즉위했다고 곧바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대보라는 상징을 받는 순간에야 비로소 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1. 대보란 무엇인가?  ‘대보(大寶)’는 조선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새(國璽) 또는 어보(御寶)를 상징적으로 이르는 표현입니다. 실제 인장 그 자체보다는, 왕권을 공적으로 승인하는 절차와 상징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위식에서 새로운 국왕은 ‘대보’를 받는 의식을 치르게 되며, 이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대보를 받는 순간, 새 국왕은 비로소 ‘진짜 왕’이 되는 것입니다.  2. 실록이 보여주는 ‘대보’의 상징성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표현을 보면, 이 ‘대보’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연산군의..

사관의 메모 2025.04.12

상소, 상차로 본 조선 간언 제도 | 조선은 왜 말 대신 글로 정치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에게 간언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얼핏 볼 땐 대화같지만, 자세히 보면 글을 통해 오가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는 왕에게 간언할 때, 글로 상소(上疏)나 상차(上箚)를 올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상소와 상차, 그리고 대간의 간언 제도를 통해 조선의 정치가 어떻게 문서로 운영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1. 조선의 간언 제도란? 상소와 상차, 구언의 차이를 중심으로 조선은 임금의 잘못이나 잘못된 정치를 신하가 바로잡도록 한, ‘간언(諫言)’ 제도를 갖춘 나라였습니다. '왕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을 단순한 '충돌'이나 '대립'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공식 제도화된 충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조선 대간(사헌부,..

사관의 메모 2025.04.11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2년 Day3 - 끝나지 않는 윤채 사건, 그리고 중이 되어버리는 백성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2년 1월 3일자 기록입니다. 대간과 대신들이 다시 윤채와 정진의 처벌을 요청하지만, 연산군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 백성들이 왜 중이 되는지를 고민하며, 군역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모습도 드러납니다.   1. 연산군 2년 Day3 – 윤채 사건, 끝없는 갈등.... 그리고 백성을 걱정하는 왕 1월 3일 실록에는 세 가지 주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먼저, 어제에 이어 윤채와 정진의 처벌 문제를 두고 조정이 다시 술렁입니다.그리고 연산군은 백성들이 왜 중이 되는가를 고민하며, 군역 제도의 문제를 짚습니다.마지막으로, 계속 간언이 묵살되자 대간이 아예 사직까지 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죠.과연 연산군은 이 간절한 목소리에 응답했을까요? 이날 실록, 한 줄씩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

실록 정주행 2025.04.11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2년 Day2 - 몸은 아프다 하고 귀는 닫다

오늘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2년 1월 2일자 기록을 살펴봅니다. 병을 이유로 경연을 빠진 연산군은, 윤채 사건을 두고 거듭된 간언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대간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날입니다. 1. 연산군 2년 Day 2 - 간언을 거부하는 왕 즉위 이틀째인 1495년 1월 2일, 연산군은 경연에 빠집니다. 이유는 "몸이 편치 않다"는 것. 하지만 진짜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전날부터 이어진 윤채 사건을 두고, 대산과 연산군 사이의 의견 충돌이 계속됩니다. "간언이 두렵지 않다"는 왕과 "간언을 막는 것이야말로 큰 과실"이라 외치는 신하들의 대립이 이어집니다. 2. 실록 쉽게 읽기 - 연산군 2년 1월 2일 🖌 계성군 이순의 불참 선언 계성군 이순이 삭제(초하루에 지내는 제사)에서 향과 축문을..

실록 정주행 2025.04.11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2년 Day1 - 대간과의 첫 충돌, 정진 사건과 소금 논쟁

오늘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2년 1월 1일자 기록을 살펴봅니다. 연산군이 즉위한 지 하루 지난 날, 첫 국정 운영에서 대간과 충돌하는 모습이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이는 연산군 통치 시기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1. 연산군 2년 Day 1 - 즉위식 다음날, 시작부터 대간과 충돌 연산군 2년 1월 1일, 조정에서는 두 가지 핵심 사건이 논의됩니다. 하나는 ‘정진 사건’으로 대표되는 풍기문란과 유교 질서 문제, 다른 하나는 ‘절에 소금 공급’이라는 재정 운용 이슈였습니다.두 사안 모두에서 연산군은 대간의 반대를 정면으로 거절합니다.이 논쟁은 이날로 끝이 아니라 이후로도 한동안 지속됩니다. 오늘은 그 발단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2. 실록 쉽게 읽기 - 연산군 2년 1월 1..

실록 정주행 2025.04.09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1년 Day5 - 연산군, 진짜 왕이 되는 날!

'조선왕조실록을 한 줄 한 줄, 쉽게 풀어보는 시리즈', 오늘은 『연산군일기』 1년 12월 29일 기록입니다.  이날은 연산군이 왕으로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날입니다. 이날의 연산군 일기를 통해 조선시대 왕의 취임식 현장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1. Day 5 -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의 즉위식 전과정 연산군이 진짜 왕이 된 날, 사면령을 내리고, 대보(大寶)를 받는 의식을 치르고, 첫 교서를 반포하는 과정이 모두 진행됐습니다. 즉위식을 앞드고는 '사면령'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도 벌어졌습니다. 이날의 실록은, 연산군이 진짜 ‘왕’으로서 첫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연산군 즉위년 12월 29일은 이 해의 마지막 기록이기도 한데요, 조선은 양력이 아닌 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해마다..

실록 정주행 2025.04.09

조선왕조실록 한 줄 한 줄 읽기 | 연산군 1년 Day4 - 성종의 장례 절차와 연산군의 독단적인 결정

'조선왕조실록을 한 줄 한 줄, 쉽고 꼼꼼하게 풀어보는 시리즈', 오늘은 연산군 일기 4일째입니다. 이날도 성종의 장례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불교 의례를 둘러싼 연산군과 신하들의 의견 충돌이 계속됩니다. 오늘은 연산군의 고집과 신하들의 반발, 그리고 장례 절차의 마무리에 대한 기록을 쉽게 풀어봅니다.  1. Day 4 - "듣지 않겠다!" 신하들은 불교식 제사를 끈질기게 반대하지만, 연산군의 고집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두가 반대하지만, 묵살하고 밀어붙입니다. 이 와중에 장례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연산군과 신하들의 갈등은 더 깊어집니다.    2. 실록 내용 쉽게 읽기 🖌 대행 대왕의 행장 작성 지연 문제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의 장례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성종의 행장을 쓰는 일이 미뤄졌습니다. 대간..

실록 정주행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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